【서울=메디컬투데이/뉴시스】

“만만한 게 공보의입니까?”
이는 지난 1일 복지부가 매월 넷째 주 토요일을 ‘임산부 건강의 날’로 정하고 오전 진료를 시작한다고 밝힌 데 따른, 일선 공중보건의들의 싸늘한 반응이다.
경기 북부지역의 한 보건소에 근무하고 있는 김모(31) 공보의는 “이번 정책은 출산 장려정책이라는 미명 하에 시행되는 선심성 정책으로, 공보의들의 처우 개선은 안중에도 없이 또 다시 공보의들에게 대국민 봉사만 강요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복지부 보건정책팀 관계자는 “평소 맞벌이를 하는 직장 여성들이 영유아 예방 접종과 산전 검사를 주말에 받기를 희망하는 민원이 끊이지 않아 실시하게 된 정책”이라며 “줄어드는 출산율을 조금이나마 해소하고, 직장 여성들의 호응이 클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보건소 관계자들 특히 공보의들은 “사전에 일선 보건소와 해당 정책에 관한 논의 한번 없이, 시행 1∼2주전에 지침이 내려와 속수무책으로 주말 진료에 나서게 됐다”며 “갈수록 경영난이 심각해지는 산부인과 전문 병의원을 위한 지원 정책을 마련하는 것이 보다 효율적이고 실질적인 일”이라고 전했다.
복지부의 설명대로 이번 정책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및 대도시 지역 보건소에서만 그나마 실효성을 거둘 수 있을 뿐, 산간오지나 지방소도시 같은 농촌에는 별 해당사항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 산모 없는 시골에 보건소 산전 검사가 웬말
청년층 인구가 거의 없는 농촌 지역에는 신생아나 산모가 거의 없어, 산모나 영유아가 찾지 않는 데도 불구하고 주말 진료를 해야 하기 때문에, 해당 지역 공보의들의 불만은 클 수밖에 없다.
이번 정책을 제안한 복지부 관계자 역시 “이번 정책은 사실상 농촌 지역에는 별 해당사항이 없고, 서울 및 대도시권 맞벌이 부부를 위한 것”이라고 전했다.
이처럼 효용성이 극히 적은 정책에도 불구하고, 일선 보건소는 복지부 지침에 따를 수밖에 없다. 특히 이러한 주먹구구식 행정에 대해 현실적으로 반기를 들 수 없는 공보의들은 점차 진료에 대한 의욕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김모 공보의는 “산모가 없는 시골 보건소에서 한 달에 한번 산전 검사를 한다고 출산율이 올라가는 것도 아닌 데, 복지부가 주먹구구식으로 전국의 모든 보건소에 이 같은 지침을 내린 것은 지역적 편차도 고려하지 않고 급조된 정책에 불과하다”며 흥분했다.
◇ 애매모호한 신분으로 인한 처우 문제
이번 사례뿐만 아니라 농어촌 지역의 의료공백을 메우기 위해 시작된 공보의 제도는 주무 부처의 무책임성과 열악한 처우, 애매모호한 공보의들의 직급으로 인해, 해마다 제도 개선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특히 올해는 대한공중보건의협의회(이하 대공협, 회장 송지원)가 설립된 지 20년을 맞은 해이지만, 공보의들의 처우는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이 공보의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이에 따라 대공협 송지원 회장은 올해 초 취임 당시 “애매모호한 신분으로 인해 발생하는 열악한 처우를 우선 개선하는 데 주력하고,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공보의들의 위상강화, 복지향상, 의권 회복에 나서겠다”고 각오를 밝힌 바 있다.
공보의들의 처우 개선을 말하기에 앞서 우선 언급해야 할 부분은 무엇보다 ‘애매모호한 신분’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공보의 제도는 1980년 ‘농어촌보건의료를위한특별조치법(농특법)’으로 제도가 확대되며 현재의 체제로 자리를 잡게 됐다.
그러나 농특법에는 세부적인 시행 규칙이 없어 공보의들의 입지가 불안하기는 이전과 다를 바 없었다.
1980년 농특법이 제정됐지만 공보의가 국가 공무원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11년이 지난 1991년에서였다.
이로 인해 공보의는 공무원법상 계약직공무원으로 되어 있지만, 현재까지도 명확한 직급이나 역할 규정이 없어 일선 보건지소에서 심심치 않게 공무원들과 마찰을 빚고 있다.
현재 공무원법상 공보의들은 명확한 급수가 없어, 정작 공보의들은 스스로를 5급 정도로 여기지만 일반 공무원들은 공보의를 7급으로 인식, 최근 빈번하게 발생하는 보건지소장 임명에 대한 인식 차도 이에서 비롯된다 할 수 있다.
◇ 공보의 관련 정부 부처만 4군데
이와 더불어 공보의들을 둘러싼 규칙 및 보수 지급 및 관련 규정이 4개 정부 부처에서 담당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공보의들의 보건의료 관련 행위에 대한 지침 및 시행 규칙 등은 보건복지부가, 공보의의 권한과 지위에 관한 사항은 행정자치부가, 보수 및 처우는 재정경제부에서, 공보의 복무 관련 규정은 국방부가 각각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공보의 관련 규칙 하나만 개정하려 해도, 4군데 부처간의 승인과 조율이 필요한 상황이니 쉽게 공보의 제도가 개선될 리가 없다.
1980년 농특법 제정 후 11년이나 지나서야 겨우 공보의들이 국가 공무원 직급을 인정받은 것도 그러한 부처간 조율이 어려워 발생한 대표적 예다.
이미 1990년에 공보의를 공무원으로 규정하자는 안이 복지부를 통과했지만, 경제기획원의 추가 예산 집행 거부로 공무원 신분 인정은 1년이 지난 1991년에서야 이뤄졌다.
거기다 경제기획원은 예산상의 이유를 들어 수당 및 기타 복리후생비 지급의 유보를 단서조항으로 달았는데 지금도 수당 부분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대공협의 커다란 과제로 남아 있다.
◇ 대국민 ‘봉사’요구 전에 공보의 처우부터 개선해야
웰빙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과거 1차 진료에만 신경을 써오던 보건소의 위상이 변해가고 있다.
이에 따라 공보의들의 역할도 농어촌 지역에서 대민 봉사 차원의 1차 진료만 할게 아니라, 한 차원 앞서나간 예방사업과 국민건강 증진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미 1996년에는 고혈압 유병률 조사사업을 전개하는 한편, 2000년 들어서는 보건의료산업진흥원이나 보건복지부에 공보의 인력이 배치돼 진출시키는 노력을 해오고 있다.
이와 더불어 올해 대공협은 창립 20주년을 맞이해 ‘애프터 유(After you) 캠페인’을 벌이고 ▲환자 얼굴 한 번 더 보기 ▲진료할 때 손 한 번 더 잡기 ▲인사 한 번 더 하기 등 3가지 실천방안을 통해 국민에게 다가가는 공보의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처럼 ‘국민을 먼저 생각하는 공보의’를 모토로 보건위생·예방보건 사업 등 정책적 보건사업을 전개하는 것이 공보의 본연의 모습이지만 ▲ 신분 보장을 통한 정체성 확립 ▲ 정액급식비, 직급보조비, 교통보조비, 진료활동장려비 등 제도적 장치가 마련이 시급하다.
대공협 송지원 회장은 “지난 2,3일 열린 대공협 3차 중앙상임이사회에서 공보의 처우 개선에 대한 지속적인 논의를 진행했고, 그와 함께 9월부터 시행되는 주말 보건소 진료에 대한 건을 논의했다”며 “공보의들은 일선 현장에서 진료와 예방사업을 담당하면서도, 스스로 자신들의 처우까지 개선시키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며 공보의 현실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함께 정부의 공보의 관련 제도에 대한 조속한 개선을 당부했다.
석유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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