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에는 커다란 배낭을 메고 한손에는 u-rail pass를 들고...>
이런 모습으로 우리는 인천 공항을 떠났다.
동료의 말대로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청원군청에서 공무원 해외배낭여행에 제출한 계획서가 채택되어
유럽여행의 기회가 왔을 때 우리는 팩키지가 아닌 진짜 배낭여행을 계획했고
실행에 옮겼던 것이다.
가고 싶은 나라를 정해서 스케쥴을 짜고 준비물을 의논하고 인테넷을 서핑하며 민박을 정하고
비행기표를 예매하고 두 번에 걸친 사전 만남을 통해 기도회로 마음을 다지면서
차근히 준비를 했다.
다행히 같은 팀원 중 오스트리아에 친구가 간호사로 있어서 많은 정보와 자료를 얻었고
오스트리아에서의 노인시설과 너싱홈 방문은 그 친구가 맡아서 해 주기로 했다.
언어가 상당히 염려스러웠지만 나름대로 준비한 팀원들도 있었기에
우리는 서로를 믿으며 그렇게 떠났던 것이다.
인천공항에서 프랑크푸르트를 경유하여 스위스 쮜리히에 도착 후
드디어 유레일을 타고 베른을 거쳐 다시 셔틀 버스로 갈아타고
새벽 1시경 인터넷으로 예약한 강촌민박을 찾을 수 있었다.
말도 잘 안되는 상황에서 한국에서 스위스까지 우리가 스스로 왔다는 자부심에
우리는 한껏 부풀어 스위스의 첫 밤을 보냈다.
이튿날 우리는 인터라켄 동역을 출발하여 유럽에서 가장 높다는 3970m융프라우로 향했다.
1898년에서 1912년에 걸쳐 일본인들이 산악열차를 만들어 놓았는데
그 장엄한 바위를 뚫고 만든 기차레일을 보면서 그들의 솜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산악열차를 타고 가는 동안 창밖으로 펼쳐지는 광경은
사진만 찍으면 달력그림이 되는 그런 아름다운 정경이었다.
한도 끝도 없이 펼쳐지는 만년설과 푸르른 하늘.
그리고 거대한 바위들...간간히 보이는 운치있는 농가들의 모습....
금방이라도 알프스 소녀 하이디가 튀어나올 것 같은 그런 정경이었다.
가는 도중 일행 중 한명이 기차가 정차한 동안 잠시 내렸다가 기차가 떠나는 바람에
발을 동동 굴렀던 생각이 난다.
다행히 그 다음 기차로 와서 우리는 무사히 만날 수 있었지만....
그런데 특이한 일은 관광객 대부분은 거의 다 노인들이었다.
물론 휴가 성수기가 아니어서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정말 유럽이 점점 초고령 사회임을 이런 광경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아주 멋진 황혼의 노부부들이 다정스레 여행을 즐기는 모습을 바라보니
그 비슷한 나이에 계신 우리들의 부모님 모습이 투영되어 부럽기도 하였다.
몇 십년 후 나도 저 나이에 저런 모습으로 남은 인생을 살려면
젊은 시절에 좀 더 열심히 살고 그리고 건강관리도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노부부들을 보면서 하게 되었다.
그 이튿날은 스위스의 루쩨른이라는 도시를 관광하고
우리는 다시 물어물어 유레일을 타고 오스트리아로 떠났다.
우리가 도착하기 전에 홍수가 나서 유레일이 도중에 끊긴 곳도 있어서 버스도 타고
고생고생을 하면서 팀원의 친구가 기다리고 있는 오스트리아에 도착하니
이제부터는 한국 사람이 가이드를 해준다는 생각에 마음이 푸근해졌다.
오랜만에 우리 일행이 아닌 한국 사람을 만나 한국말을 실컷 하니 얼마나 좋은지
답답한 가슴이 오랜만에 트인 느낌이었다.
오스트리아에서 민박을 하면서 이곳에 오신지 수 십년 되었고
오스트리아 사람과 결혼해서 가정을 꾸미고 계신 주인 아주머니와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타국에서의 외로움을 이기고 나름대로 성공하신 이야기를 들으면서 날이 새는 줄 몰랐다.
그 이튿날은 예정대로 노인시설과 너싱홈과 인스브룩 의과대학 병원을 방문하기로 하고
집을 나섰다.
노인양로시설은 평균87세의 노인들이 계셨고 5개의 집으로 연결되어 각 스테이션마다 20명을 돌볼 수 있도록 되어있으며
200개의 방을 가지고 있는 큰 규모이며 너무도 아름다운 시설이었다.
그리고 아주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프로젝트를 가지고
노인 분 들의 입장을 최대한 고려하여 운영되고 있었다.
방마다 비데와 욕조는 물론 버튼만 누르면 스테이션이나 식당에서 관리인들이 볼 수 있는
호출램프가 켜지게 되어있고(노인들은 핸디를 차고있음)
아름다운 정원에서의 원예요법, 미술요법, 운동요법, 회상요법, 놀이요법은 물론
미용실까지 있어서 그 편리함을 더했다.
조명 시설만 보아도 천정에 설치하면 눈이 피로하다고하여 벽을 따라 있는 손잡이 아래에
조명을 넣어 분위기가 아주 좋았다.
이런 좋은 시설의 비용은 의사가 0단계에서부터 7단계까지 구분하여 이것에 의해 보험에서 나온다고 한다.
이런 시설이 인스브룩에만 해도 7개가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인지 그곳에 계시는 노인분들의 얼굴이 모두 안정되고 평안해 보였다.
이것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현재 노후대책이 비교되니 너무나 부러운 마음이었다.
그 다음 인스브룩에서 가장 큰 너싱홈을 방문하였는데 500명을 관리하고 있었다.
그 중 200여명은 간호가 필요한 사람이었고 200여명은 가사일을 돕고 있었으며
간호사13명과 AN28명과 보조인력으로 방위병을 쓰고 있었다.
퇴원 후 간호할 사람이 없을 때 병원에서 의뢰를 하면 관리를 하게 되는데
치매인 경우 일상 생활을 돕고 만성질환일 경우는 스스로 관리를 못할 때만 도와주게 된다.
구역이 나뉘어서 RN1명에 AN2~5명이 일하고 있다.
특이한 것은 telephone neting(응급상황 발생시 환자가 누르면 응급차에 신호감)시스템이 있어서 응급환자 발생시 신속한 후송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한달에 20유로를 지불하고 관리를 받고 있는데 응급 시 뿐 아니라 1일1회는 신고를 하게 되어있었다.
갈수록 노인 인구가 늘어 주말에도 교대로 일을 하고 있으며
그러나 보험제도가 잘 되어있어서 개인적인 부담은 많이 가지 않는 것이 참으로 부러웠다.
우리나라도 점점 고령사회로 되어 가는 시점에서 가정간호사 제도가
하루 빨리 정착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 다음에는 인스브룩에서 외과로 유명한 인스브룩 의과대학을 투어하고
일정을 마친 후 다음날은 렌트를 해서 이태리 수상도시로 유명한 베네치아를 관광하고 비엔나를 관광 후 다시 유레일을 타고 프랑스로 향했다.
비엔나에서 오전 시간만 도움을 받은 가이드를 통해서 급히 파리 호텔로 예약을 한후에
이제부터는 아는 사람 없는 파리에서 펼쳐질 일을 생각하며 우리는 피곤한 몸을 눕혔다.
이듵날은 주일이어서 전화로 물어물어 파리 장로교회를 찾아가 예배를 드렸는데
유학생이 많은 교회여서 성가대의 찬양이 너무나 훌륭했고
오랜만에 한국인들 무리에 섞여보니 참으로 푸근했다.
그날은 마침 추석이어서 교회에서 떡도 먹고 파리에 대해서 자세한 관광 안내도 받고
감사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고 우리는 파리시내로 나왔다.
우리는 만들어간 자료를 보면서 이것이 루브르구나...저곳이 노틀담이구나...를 감으로 잡으며 파리를 누볐다.
아쉬운 것은 가이드가 없었기에 놓치는 관광지도 있었겠지만
이런 관광도 참으로 새로운 경험이었다.
밤에는 유명한 샹젤리에 거리를 걸으면서 개선문에서 온갖 폼을 잡으며 사진을 찍고
파리의 멋쟁이들 속에 섞여 모두 함께 멋진 파리의 모자도 써보고
아름다운 에펠탑에서 파리 시내를 한눈에 즐기며 세느강을 거닐며 유람선을 타고
몽마르트 언덕을 오르며 마음껏 나름대로의 관광을 즐겼다.
한팀을 이루어 다닌다는 것은 쉽지 않은 점도 있었지만 어디에 가도 겁나는 것이 없었으니
이것이 동료애로 뭉쳐진 힘이었으리라.
이렇게 우리는 프랑스를 마지막으로 아쉬움을 접은 채 다시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인천까지 무사히 돌아왔고
내리자마자 들리는 반가운 한국말에 어찌나 가슴이 펑 뚫리는 시원함을 맛보았는지
역시 우리나라 좋은 나라임을 새삼 느꼈고 가족을 소중함도 다시금 깨달은 좋은 경험이었다.
해외연수...!!
가장 크게 얻은 느낌은 아스라하게 느껴졌던 동경했던 나라들이
이제는 한눈에 손에 잡힌듯하니 서계는 그리 넓은 것 만은 아니구나 라는 현실감이 새롭게 다가섰고
우리나라도 어느면이든 다른나라 못지않은 수준을 가졌기에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리고 한 팀을 이루어 여러 날을 여행한다는 것이 힘들기도 했지만
서로를 잘 알고 또한 나도 잘 알게 되는 그런 기회였다고 할까?
이제는 다시금 제 자리로 돌아와 일상에 선 지금
그때의 많은 경험들이 나의 삶을 훨씬 더 여유있게 하는데 많은 역할을 하게 된다.
좀 더 풍성하게 가지게 된 마음의 여유와 넓어진 시야는 이론에서만으로는 얻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한다.
많은 것들이 우리를 떠나지 못하도록 우리의 발을 붙들고 있겠지만 기회가 왔을 때
혹은 기회를 만들어 과감히 떨치고 나서는 용기를 낸다면
훨씬 더 많은 것들이 보상으로 돌아와 준다는 것을 이번 기회를 통해서 확신하게 되었다.
이제 남은 나의 삶이 남을 위해 나눠줄 수 있는 풍성한 삶이되기 위하여
마음의 풍요를 준비한다면 이만한 투자는 해야 하리라는 생각을 하면서
끈끈한 동료애로 많은 시간을 함께 나눈 동료들과 오스트리아의 동료 친구분께 감사의 말을 드리면서
많은 분들도 이러한 기회를 누리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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