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너무 외로워서 슬퍼"
돌탑이 쌓여 있는 절에서 만난 할머니이야기
텍스트만보기   이인옥(heemangsh) 기자   
"나는 사는 게 너무 외로워서 슬퍼. 그래서 매일 매일 눈물이 나와."

할머니의 그 말씀이 아직도 생생하게 귓가에 맴돈다.

▲ 절 근처에 서 있는 감나무 뒤로 돌탑이 줄을 지어 서있다.
ⓒ 이인옥
지난 3월말, 보건복지부에서는 맞춤형 방문건강관리 사업을 실시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 전 단계 사업으로 맞춤형 방문건강관리 사업 가구조사를 실시 중이다. 현재 보건진료소에서도 관할지역 주민들을 위한 가구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 위 계층이 우선 조사대상자다.

대상자를 방문하기 전에 먼저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를 타고 넘어오는 할머니 목소리가 참 맑다고 생각하였다. 방문의 목적을 간단히 말씀드리고 차를 몰아 가구조사 대상자이신 할머니와 아저씨 한 분을 만나기 위해 출발하였다.

▲ 송암사 절에 쌓여 있는 돌탑이 산과 어우러져 멋진 모습으로 앉아 있다
ⓒ 이인옥
그분들은 마을을 둘러싼 산 속에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는 암자에 기거하고 있었다. 절 입구에 차를 세워두고 방문 가방을 들고 내리는데 커다란 돌탑들이 나를 놀라게 한다. 저 돌탑을 쌓기 위해 필요한 돌을 옮기고 쌓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첨성대처럼 쌓여진 돌탑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내 키보다 훨씬 큰 돌탑들이 잠시 나의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절이 작고 아담한 반면 돌탑들은 웅장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 절 입구에 세워진 돌탑과 다듬어 지지 않은 연못
ⓒ 이인옥
입구에 세워진 돌탑을 지나 할머니를 부르며 절 안으로 들어섰다. 마당에서 햇빛에 널어놓은 물건을 걷으며 할머니 한 분이 반겨주었다. 스님처럼 머리를 한 할머님께 인사를 하고 가구조사를 위한 상담에 들어갔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갑자기 할머니 눈에 눈물이 맺힌다. 사는 게 너무 외로워서 슬프다는 이야기다. 오랜 시간을 혼자 살아오면서 외로움을 많이 느끼셨다고 한다. 그래서 매일 매일 슬프고 눈물이 나온다는 할머니의 손을 꼭 잡았다.

잠시 할머니께서 이야기를 하시도록 듣고만 있었다. 할머니는 가슴에 무겁게 담아 두고 혼자만 느껴온 외로움을 실타래처럼 길게 풀어놓으셨다. 이럴 때는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된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한참을 경청하였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 웃음 띤 얼굴로 지난 삶의 이야기들을 잔잔하게 들려주셨다. 할머니는 굉장히 점잖고 조용하신 분이었다.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기품 있고 특별히 요구하는 것도 없이 자신을 찾아준 것에 대해 고마워하셨다.

▲ 화상으로 발가락을 모두 잃은 아저씨가 힘겹게 돌탑 사이를 걷고 있다.
ⓒ 이인옥
때 마침 밖에서 다른 대상자 한 분이 들어오셨다. 50대 아저씨였다. 그분 또한 혼자였고 당뇨병을 앓고 계셨다. 미혼이기 때문에 가족이 없다고 했다. 어쩌다 화상을 심하게 입어서 양쪽 발가락을 모두 절단하는 어려움도 겪었다고 한다. 두 분 다 혼자서 외롭게 살고 계셨다. 외지에서 살다가 이 절에 들어와 머물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마땅히 갈 곳이 없고 반겨주는 이도 없기에 그냥 이곳에서 머무는 것이라 한다.

▲ 산길과 돌탑이 잘 어우러진 풍경
ⓒ 이인옥
두 분과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편하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들에게서 가느다란 희망을 읽을 수 있었다. 참 다행이라 생각하였다. 아무런 희망도 갖지 않고 살아간다면 더 외롭고 쓸쓸할 것이 아닌가. 비록 실낱 같은 희망이지만 품고 살아가기에 잠시라도 웃을 수 있는 여유가 있지 않은가. 밖에 쌓여진 돌탑처럼 그 희망이 점점 커지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작별인사를 하고 나오자 할머니께서 따라 나오셨다.

마침 가방에 넣어 가지고 온 카메라가 생각났다. 할머니께 꽃 앞에서 사진 한 장 찍어드려도 되느냐고 묻자 좋아하셨다. 활짝 핀 연산홍 앞에 서 계신 할머니께, "자! 웃으세요? 김치!"하자 수줍게 웃으신다. 소녀처럼 웃는 할머니의 모습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앞으로도 그렇게 맑게 웃으며 살아가시라고 마음 속으로 기도하였다.

내려오면서 절 주변에 세워진 돌탑과 주변의 풍경을 사진기에 담았다. 봄이 입혀 놓은 연초록과 돌탑이 잘 어우러진 모습이다. 사진을 찍으며 오늘 만난 할머님과 아저씨의 삶이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기도하였다. 경건하게 울려 퍼지는 불경소리가 점점 멀어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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