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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의 아침은 이릅니다. 예순 노인이 막내로 불리는 농촌 충북 음성군 금왕읍 유포리. 이곳 주민들은 새벽녘에 일어나 논밭을 한 바퀴 휘 둘러보고 조반을 들고 나서 삼삼오오 짝을 지어 진료소로 향합니다. 오래 써서 여기저기 시원치 않은 몸을 살피는 것은 둘째고 환하게 접시꽃 웃음으로 맞아주는 임정순 소장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이 점잖은 충청도 양반들은 임 소장을 ‘딸 같고 며느리 같다’며 애틋한 마음을 감추지 않는데 송삼섭(73) 할머니는 “우리 소장님, 어디로 갈까봐 겁나유.”하면서 깊은 정을 드러냈습니다. 94년부터 이곳에서 진료소장으로 일해 온 임 소장은 보기만 해도 힘이 나는 웃음을 선사하는 사람입니다. 즐거운 보건소에서는 인사법도 다릅니다. “안녕하세요!”라는 말 대신 “아싸!”라는 감탄사가 오가는데 그 뜻은 “아끼고 사랑합시다!”라고 하는군요. 물론 이 인사법도 웃음전도사 임소장의 머리에서 나온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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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소장은 만능재주꾼입니다. 300여 가구, 900여 명 주민들의 건강을 돌보는 진료소장이면서 종이접기, 풍선아트, 기체조 등을 가르치는 강사이고 수필가입니다. 임 소장은 나이가 들수록 손을 움직이는 것이 뇌 건강에 좋거니와 할아버지 할머니 댁을 찾는 손주들과 즐거운 한 때를 보내시라는 마음에서 종이접기와 풍선아트를 배워 마을 어르신들께 가르쳐드렸습니다. 동작이 쉽고 부드러운 기체조는 어르신들이 무리 없이 즐기실 수 있는 운동이라 요즘도 열심히 배우면서 가르쳐 드리고 있습니다. 기체조와 함께 그간 꾸준히 어르신들과 함께 한 생활체조는 얼마 전 군 대회에서 으뜸상을 수상할 만큼 실력이 좋습니다. 4년째 아침마다 하고 있는 걷기운동은 생활 체조를 위한 기초체력을 다지게 해주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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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진료소로 진료와 상담을 받으러 오시는 분들과 함께 하루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오후에 접어들면 지역의 가정방문을 위해 가방을 챙겨듭니다. 가뜩이나 일손이 모자란 농사 때문에 진료소에 오지 못하는 주민이나 거동이 불편한 노인 댁을 방문하기 위해서입니다. 마을 주민들의 건강을 속속들이 꿰고 있는 임 소장은 길에서 할머니를 만나도 건강을 위해 한 마디 건네는 일을 잊지 않습니다. “할머니, 밭일 중간 중간에 허리도 천천히 돌리시고 다리도 이렇게 움직이셔요.” 살뜰한 말 한마디에 할머니는 일손을 잠시 놓고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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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풍으로 몸져누운 어르신, 화상으로 문밖출입이 힘드신 어르신들은 이 계절에 더더욱 신경을 써서 욕창을 관리해 드리고 상처를 소독해 드려야 합니다. 치매 할머니의 기저귀를 갈아드리고 화상 할아버지의 옷을 갈아 입혀 드리는 손길마다 임 소장은 “많이 좋아지셨다.”는 말을 빠뜨리지 않습니다. 말 한마디의 위안이 얼마나 힘을 발휘하는 지 아는 까닭입니다. 얼마 전 부엌일을 하다가 화상을 입은 조성대(79) 할아버지는 “새 살도 나고 좋아지셨어요. 할아버지도 이제 하루하루 더 좋아질 거라고 생각하셔요!”라고 말하는 임 소장을 향해 아이처럼 맑은 웃음을 건네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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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순 소장에게는 천군만마 부럽지 않은 지원군이 있습니다. 그가 하는 일이라면 열일 제쳐두고 달려오는 마을의 자원봉사자들입니다. 진료소의 운영위원회를 이끄는 정용기(60) 회장을 비롯하여 채장순(66) 씨, 명영순(60) 씨, 김명희(51) 씨 등은 임 소장의 소중한 인연입니다. 마을의 발전을 위한 일에 마음이 척척 맞는 이들은 요즘 지금의 작은 진료소를 넓게 새로 짓는 일에 뜻을 모으고 있습니다. 체력 단련실, 취미교실 등을 더한 새로운 진료가 문을 연다면 마을은 더 즐겁고 건강해지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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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소장은 얼마 전에 수필가로 등단했고 가정전문간호사 자격증과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사람들은 그 바쁜 와중에 언제 그렇게 공부를 했느냐고 놀라지만 임 소장은 마을 어르신들이 아낌없이 주신 사랑을 생각한다면 아직 부족한 게 많다고 느낍니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모르는 것처럼 마을 어르신들이 그를 먼저 사랑했는지 그가 먼저 어르신들을 사랑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시작을 알 수 없는 사랑의 힘은 그 깊이도 알 수 없이 깊어만 갑니다. 임 소장은 지금까지 많은 일을 해냈듯이 앞으로도 많은 일을 해낼 것 같습니다. 글 | 박현숙 | 자유기고가 사진 | 이영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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